간단한 해결 방법

내가 평소에 무서워했던 국어 선생님이 시험을 감독하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시험지는 읽어야 할 지문으로 빽빽했고 나는 초조해졌다. 평소의 나라면 시험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계를 자주 확인했을 텐데, 무슨 생각인지 나는 시험문제 풀기에만 몰두했다. 평소보다 페이지가 지나치게 많다고 느꼈지만, 조금만 더 집중하면 어떻게든 문제를 모두 풀 수 있다고 자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험 시간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게 되었고 시험문제지 사이에서 찾은 내 답안지는 아직 마킹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답안지를 보니 이제 긴장감으로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나를 더 아찔하게 하는 것은 답안을 마킹할 수성사인펜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대각선에 앉아 엎드려 자고 있던 친구가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자신의 펜을 건네줬다.
‘쟤는 벌써 시험을 마치고 엎드려 자고 있잖아?’
나는 고마워 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펜을 건네받아 마킹을 하는데 왠지 모르게 내 손은 굼뜨고 무거웠다. 답 몇 개를 체크하자마자 시험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나는 비어있는 내 답안지를 뺏기듯 선생님께 제출해야 했다.

너무 끔찍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그렇게 잠에서 깼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고등학교 때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었어도 시험을 망친 꿈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제 30대가 되어서 이런 고등학교 시험과는 거리가 멀다.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당혹스럽고 진정이 되질 않는 기분이었다. 꿈인 걸 알고 다행인 마음이 들면서도 그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꿈꾸는 동안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게 잊히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정해진 일에서 마감에 쫓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안전한 것을 선호해왔다. 그래서 그동안 어떤 시험을 칠 때도 시간에 쫓겨 실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내가 학창 시절에 깐깐하기로 유명했던 선생님이 시험 감독이라니,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최적의 장치로 누군가 꿈을 일부러 설계한 것 같았다. 요즘 들어서 나는 전쟁 중인 꿈이라든지, 쫓기는 꿈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제 시험을 망치는 꿈까지.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왔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주제로 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시험을 대신하는 리포트로 야한 꿈 이야기를 써서 내면 학점을 잘 준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들은 과목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나의 대학 성생활과 나의 꿈을 억지로 연결 짓는 창작의 고통 끝에 내 인생 최초의 ‘단편야설’을 탄생시켰다. 아무튼 나의 모든 개꿈이 ‘기승전 성욕’으로 해석되는 ‘답정너’ 같은 수업이라 강렬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나마 좀 학문적인 방면으로 생각이 나는 것이 있다면, 꿈은 무의식을 토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내가 이런 꿈을 꾸는 것은 나의 무의식에 있는 불안한 심리가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다. 공들였던 일에 처참히 실패를 경험했고,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삶의 허무를 깨닫는 경지에 올라 은은한 광기의 미소를 띠고 다니며 주위의 우려를 받는 중이다.
‘아 그래. 내가 많이 힘들었지 그래서 이런 꿈을 꾸는구나’ 악몽의 이유를 나의 현 상태에서 유추하자 조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꿈에서까지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며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나니 정말 좀 홀가분해진 기분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지난 내 꿈 이야기를 가볍게 꺼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이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온수 매트를 뜨겁게 하고 자면 꼭 악몽을 꿔. 여보 쪽 온수 매트 온도를 좀 낮춰. 너무 뜨겁더라.”

그리고 나는 정말로 더는 꿈을 꾸지 않았다.

 

202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