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가전제품 중 나에게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것은 단연 로봇청소기였다. 남편이 로봇청소기를 처음 구입하고자 의견을 피력했을 때 나는 정말 회의적이었다.
'어휴 대체 이게 뭘 제대로 하겠어? 돈 낭비야'
그렇게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던 로봇청소기는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내더니 앱과 연동돼서 맵을 만들며 똑똑하게 이방 저방을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물걸레 기능까지 장착되어 있어 로봇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는 반들반들 광이 났다. 또 내가 직접 닦기 어려운 침대 아래까지도 열심히 닦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로봇청소기와 지낸 단 며칠 만에 나는 로봇청소기 신봉자가 되었다.
언젠가 한국인이 고장이 나도 잘 버리지 않는 가전제품 중 하나가 로봇청소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로봇청소기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정말로 정이 드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 글을 반증하듯 우리 집 로봇청소기는 '클린이'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다. 이리저리 쿵쿵 받혀가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클린이를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클린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몇 가지 준비단계가 있는데 우선 욕실이나 다용도실과 같은 청소가 필요 없는 공간의 문들을 모두 닫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나 복잡한 물건들을 정리해 준다. 그렇지 않으면 문턱 아래로 고꾸라져 처박히거나 물건과 꼬여 클린이가 헤매기에 십상이다. 그리고 청소 중에 생기는 소음이 꽤 있는 편이라, 나는 외출하기 전에 작동 버튼을 눌렀다. 그러면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반짝반짝 청소가 끝난 마룻바닥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꽤 완벽한 루틴이 만들어졌고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기특한 클린이가 딱 한 번 나에게 큰 좌절감을 준 일화가 있는데, 변명하자면 사실 클린이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집엔 검은색 푸들 한 마리가 함께 공생하고 있다. 이름은 콜라인데, 콜라는 클린이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라 클린이가 청소할 때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콜라와 클린이를 집에 두고 출근하고 돌아왔는데, 평소와 달리 반들반들한 마룻바닥이 아닌 것이다. 뭔가 양초 왁스를 바닥에 칠한 듯 양말이 뻑뻑하게 마룻바닥을 스쳤다. 갸웃해 하며 바닥의 자국을 따라 이동하는데 정말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이윽고 그 생각을 확신하게 하는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마침내 똥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방을 마주하게 되었다. 콜라가 하필 딱 똥 한 덩이를 배변 패드 영역 밖으로 내놓았고, 클린이는 그 똥 한 조각을 크레파스 삼아 완벽한 컬래버레이션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피가 식는다는 느낌을 나는 그때 처음 경험했다. 곧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고 상황 파악을 끝낸 뒤 충격으로 부들부들 떠는 나를 안방에 대피시켰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끼었고 몇 번의 헛구역질 소리가 방문 뒤로 들려왔다. 일종의 부부간의 끈끈한 의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클린이가 이미 썩은 것 같으니 버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지만, 남편은 묵묵하게 똥칠이 되어있는 클린이를 정성스럽게 씻겼다.
그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졌고, 얼마간 나는 클린이와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던가. 나는 클린이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했고 오늘도 클린이에게 바닥 청소를 맡겼다. 더러운 추억을 회상하면 아찔함에 웃음이 나지만, 여전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로봇청소기를 강력 추천한다.
"청소를 마쳤습니다. 충전기로 돌아갑니다."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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